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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박열'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직후 벌어진 조선인 학살과 그 여론을 덮기 위한 일본 제국주의 정부의 음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실존 인물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가 조선인 학살 책임을 일본 정부가 전가하려는 시도에 맞서 스스로 테러리스트로 나서는 과정을 따라간다. 당시 일본은 대지진으로 혼란에 빠진 사회를 수습하고 민중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인 폭동설'을 조작했다. 수천 명의 조선인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가운데, 일본 내 조선인 독립운동가에 대한 탄압이 심화되었다. 이 와중에 박열은 자진해서 일본 경찰에 나서며 '천황 암살을 모의했다'라고 주장하며 체포된다. 영화는 이후 박열과 가네코가 일본 법정에서 벌이는 유쾌하고도 치열한 사상 투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식민지 현실, 천황제의 허구성,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당위성을 당당하게 외친다. 그들은 오히려 법정을 선전장으로 삼아 일본 제국의 위선을 조롱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세계에 드러내려 한다. 유머와 풍자를 섞은 박열의 발언, 신념으로 무장한 가네코의 기개는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이들의 재판 과정을 통해 독립운동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극적인 영웅이 아닌 사상적 전사로서의 면모를 조명한다.
[ 역사적 배경 ]
영화 '박열'은 철저히 실화에 기반한 작품이다. 박열은 1920년대 일본에서 활동한 무정부주의자이자 시인이며, '불령사'라는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해 활동했다.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분노하며 박열과 함께 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자경단을 동원해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가장 참혹한 조선인 학살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박열과 가네코는 이 사건에 항의하며'폭력적 저항'을 자처했고, 일본 정부는 이들을 '천황 암살 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박열은 일본 법정에서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왜 저항하는지를 조목조목 밝혔다. 그의 진술은 단순한 항변을 넘어 하나의 철학적 선언이었다. 가네코 역시 법정에서'나는 천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재판장을 뒤흔들었으며, 이후 수감 중 옥사했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일본 당국이 자살로 발표했으나 타살 의혹도 존재한다. 영화는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지나친 미화 없이, 인물들의 사상과 감정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그 결과 박열은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식민 권력에 맞선 사상적 저항의 아이콘으로 재조명된다.
[ 감상평 ]
'박열'은 단순한 독립운동 영화가 아니다. 전쟁 장면도 없고 총격도 없지만, 법정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언어의 전투는 그 어떤 전투보다도 강렬하다. 이제훈은 박열 역을 맡아 유쾌하고 당돌하면서도 확고한 신념을 가진 캐릭터를 훌륭히 연기해 냈고, 최희서는 가네코 후미코 역할로 강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특히 영화는 정통 역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유머를 적절히 활용해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하면서도 메시지의 힘은 놓치지 않는다. 가네코의 말 한마디, 박열의 표정 하나하나가 관객에게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들이 가진 신념, 시대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고귀함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 감동을 준다. 감독 이준익은 '사도', '왕의 남자' 등을 통해 이미 역사와 인간 내면을 결합하는 데 능한 연출자였지만, '박열'에서는 그 역량이 더욱 빛난다. 시대를 기록하고, 인물을 복원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감독의 연출은 단단하고 밀도 있다. 이 영화는 역사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고민;하게 만든다. 특히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같은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 '박열'은 교육적 의미마저 갖춘 귀중한 콘텐츠다.
'박열'은 역사적 실존 인물의 삶을 통해 저항과 신념, 인간 존엄을 이야기하는 진정성 있는 작품이다.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철학과 역사, 사랑과 혁명이 교차하는 영화로, 지금 시대에도 반드시 봐야 할 의미 깊은 작품이다.